청호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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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5-12-30 11:31 조회 8회 댓글 0건본문
청호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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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 ID | GC40002058 |
한자 | 靑湖書院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대구광역시 수성구 청호로 250-14[황금동 269]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구본욱 |
[상세정보]
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서원.
청호서원(靑湖書院)은 조선 후기 연경서원(硏經書院)과 영모당(永慕堂)에서 강학한 모당(慕堂) 손처눌(孫處訥)[1553~1634]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서원이다. 손처눌은 계동(溪東) 전경창(全慶昌)과 한강(寒岡) 정구(鄭逑)의 문인이다. 1755년(영조 31)에 문인인 사월당(沙月堂) 류시번(柳時藩)을, 1775년(영조 51) 문인인 진주목사 양계(暘溪) 정호인(鄭好仁)을 배향하며 손처눌의 6대조 격재(格齋) 손조서(孫祖瑞)를 상위로 추배하였다. 손조서는 세종 때에 문과에 합격하여 집현전 학사와 봉산현감을 역임하였는데, 사육신의 옥사(獄死)가 있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다시는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다.
청호서원 「봉안문」은 참봉 이영세(李榮世)가 지었으며, 「춘추상향축문(春秋常享祝文)」은 현령(縣令) 손단(孫湍)이 지었다. 「봉안문」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아! 선생이시여. 이곳 남도에서 태어나, 깨끗한 바탕이었으며, 뛰어난 그릇이었도다. 소시에 계동 선생을 섬기고 이어서 사빈(泗濱)[한강 정구]에 노닐었도다. 낙재(樂齋)[서사원(徐思遠)]와 교유하고 의리에 깊이 잠겼도다. 연원에 유래가 있고 문로(門路)가 어긋나지 않았도다.”
「춘추상향축문」에 말하기를 “한강(寒岡)과 여헌(旅軒)[장현광(張顯光)]을 사우(師友)로 하여, 사문(斯文)을 창도(唱導)하여 일으켰도다. 고을에 백세토록 전형(典刑)이 되었도다”라고 하였다.
청호서원은 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 269에 있다.
1634년 모당이 타계한 후 상례 기간인 담제일(禫祭日)에 사우(師友)와 문인(門人)들이 서원에 대하여 논의하였다. 그리고 2년 후에 다시 논의하였다. 1666년(현종 1)에 법이산(法伊山) 오야(梧野), 지금의 수성 상동에 터를 정하였으나 건립하지 못하였다. 1685년(숙종 11)에 이르러 손처눌이 40여 년간 강학한 황금동 영모당(永慕堂)에 청호사(靑湖祠)를 건립하여 봉안하였다. 1694년에 서원으로 승격되었으나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 1904년에 유허비를 건립하고, 1930년에 서당을 건립하였으나 1971년에 화재로 소실되었다. 청호서원은 1972년에 사당을 건립하여 서원으로 복원하였다.
청호서원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목조 기와집이다. 사당은 ‘상인사(尙仁祠)’이고 강당의 좌실은 ‘산택재(山澤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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