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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가마쿠라 고토쿠인 절의 청동대불 뒤켠에 있던 관월당의 해체 전 모습. 국가유산청 제공
일본 가마쿠라 고토쿠인 절의 청동대불 뒤켠에 있던 관월당의 해체 전 모습. 국가유산청 제공

일본 농구 만화 ‘슬램덩크’의 배경이자 거대한 청동대불이 있는 곳으로 유명한 일본 도쿄 근교 가마쿠라의 절에서 한세기 동안 이역살이를 했던 조선시대 전통 건축물 한 채가 귀환했다.

국가유산청과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은 24일 서울 경복궁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설명회를 열어 조선왕실 사당 건축물로 추정하는 ‘관월당’(観月堂)의 건물 부재들이 일본에 반출된 지 약 100년 만에 국내로 돌아왔다고 발표했다.

최응천 청장과 김정희 재단 이사장은 앞서 23일 오후 관월당을 소유해온 가마쿠라 사찰 고토쿠인(고덕원)의 주지이자 고고학자인 사토 다카오(62) 게이오대 교수와 약정을 맺어 최근 국내 반입한 관월당 부재들을 공식 양도받았다고 밝혔다. 고토쿠인 쪽은 지난해 경내 관월당을 해체한 뒤 94건 4900여점에 이르는 부재를 국내로 이송했으며, 현재 경기도 파주 전통건축수리기술진흥재단 수장고에 보관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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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월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 맞배지붕의 단층 목조건물이다. 애초 서울 지역에 있다가 1924년 조선왕실이 담보로 내줘 조선식산은행이 소유하게 됐다고 전해지며, 그 뒤 야마이치증권 초대 사장 스기노 기세이(1870~1939)에게 증여했다고 추정된다. 스기노는 건물을 뜯어 도쿄 메구로 집으로 옮겼다가 1930년대 고토쿠인에 기증했다. 관월당은 절 경내 청동대불 뒤편으로 이전한 이래 관음보살상을 봉안한 기도 공간으로 90여년간 쓰여왔다.

관월당 부재 기증협약서에 서명한 뒤 기념 촬영하는 관계자들. 왼쪽부터 사토 다카오 고토쿠인 주지와 최응천 국가유산청장, 김정희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 국가유산청 제공
관월당 부재 기증협약서에 서명한 뒤 기념 촬영하는 관계자들. 왼쪽부터 사토 다카오 고토쿠인 주지와 최응천 국가유산청장, 김정희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 국가유산청 제공

관월당의 귀환은 소유자였던 사토 주지가 한국에서 건물을 보존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해 성사됐다. 사토 주지는 수년 전부터 절 경내에 있는 관월당을 돌려주겠다는 뜻을 한국 쪽에 전했고, 2019년부터 국가유산청과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이 나서 연구·조사, 단청 기록화 보존처리, 정밀실측 등 사업을 함께 진행해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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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전문가들의 연구·조사 결과를 보면, 관월당은 건축학적으로 간단한 목가구조의 얼개지만, 화려하고도 격식 있는 의장을 추구한 18∼19세기 대군급 왕실 사당 규모의 건물로 볼 수 있다. 최상부 부재인 종도리를 받치는 대공에 덩굴나무가 연속되는 무늬(파련)를 새긴 것이나 규모가 큰 건물의 지붕 측면에 설치한 까치발(초엽) 부재, 덩굴무늬를 조각한 지붕 아래 부재의 장식 등에서 궁궐 및 궁가 건축 특유의 의장 요소를 지녔다는 평가다.

가마쿠라 고토쿠인 경내의 관월당을 해체하는 공사 광경. 국가유산청 제공
가마쿠라 고토쿠인 경내의 관월당을 해체하는 공사 광경. 국가유산청 제공
관월당 내외부를 3D 스캔한 이미지 도면들. 국가유산청 제공
관월당 내외부를 3D 스캔한 이미지 도면들. 국가유산청 제공

기와류에서는 용과 거미, 박쥐 등 무늬가 들어간 여러 형태의 암막새가 돋보이는데, 용 무늬는 궁궐과 관련된 건축적 요소로 꼽힌다. 단청의 문양과 안료는 성분 분석 결과 18세기 후반~19세기 후반 다시 채색된 흔적이 나타났다. 각 층위 단청들은 구름 모양이나 ‘卍’(만)자 모양의 격조 높은 무늬들로 장식돼 높은 건물 위계를 드러내며, 문양과 색채에서 궁궐 단청 특징도 확인된다. 건립 공정을 기록한 상량문 등의 기록 자료는 해체 당시 나오지 않아 원래 건물 명칭과 건립 장소, 배향인물 등은 밝혀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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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 실측 작업을 통해 일본으로 이건된 뒤 건물의 양식과 구조 등이 일부 뒤바뀐 사실도 밝혀졌다. 기단 석재는 인근 가나가와현과 도쿄 북부 도치기현에서 캐낸 안산암·응회암이고, 기단 내부는 뒤채움 없이 비어있었다. 기존 조선시대 건물에서 찾기 어려운 양상으로 도쿄와 가마쿠라로 이건하는 과정에서 변모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건 때는 건물 뒤 벽체 바깥에 잔자갈과 몰탈 등을 섞은 혼합물로 화방벽이 세워졌고, 지붕에는 덧지붕이 올려졌다. 정면에 세운 난간과 일본 목재상 정보가 적힌 판벽 재료 등 또 다른 변형 흔적들도 발견됐다.

해체와 운송 비용을 모두 부담하며 관월당 귀환을 이끈 사토 주지는 이날 설명회장에 나와 건물 보존과 문화유산 교류 지원을 위해 약 1억엔의 기금을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에 기부하겠다는 뜻도 비쳤다. 그는 “한국 전문가들과 협업하면서 건물의 역사적 가치를 분명하게 알게 됐고, 최적의 보존을 위해 돌려보내는 것이 최선이라는 국가유산청 요청에 공감해 기증을 결정했다”며 “관월당이 약 100년간 고토쿠인 절에서 자리했던 역사적 의미도 기억하면서, 한국의 적절한 장소에서 본래 가치를 회복하길 바란다”고 했다.

최근 국내로 이송돼 경기도 파주 전통건축수리기술진흥재단 수장고에 보관 중인 관월당의 해체 부재들. 국가유산청 제공
최근 국내로 이송돼 경기도 파주 전통건축수리기술진흥재단 수장고에 보관 중인 관월당의 해체 부재들. 국가유산청 제공

국가유산청 쪽은 파주 수장고에서 관월당 부재 수리 작업을 진행하면서 원래 터 자리 등을 밝히는 학술 연구와 보존·활용 방안을 찾을 계획이다.

노형석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