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경서원과 무동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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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5-12-30 11:26 조회 4회 댓글 0건본문
연경서원 터, 지금 보지 못하면 영영 못 본다
[대구의 서원] 대구 최초의 서원 연경서원 창건을 주도한 전경창과 무동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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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경서원은 대구에서 최초로 세워진 서원이지만 임진왜란 때 전소된다. 연경서원 일대의 연경동에 지어졌던 주택 등 건물들은 현재 아파트 단지 조성을 앞두고 대부분 철거되었고, 연경서원 인근의 것으로 여겨지는 구강당(九岡堂, 채씨 재실)만 이전 복원을 기다리며 폐허처럼 남아 있다. ⓒ 정만진관련사진보기
1542년(중종 37),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서원이 세워진다. 그 후 경주 서악서원, 영천 임고서원, 해주 문헌서원 등이 연이어 설립된다. 자극을 받은 이숙량(李叔樑, 1519∼1592), 전경창(全慶昌, 1532∼1585) 등 대구 선비들도 서원 건립에 나선다.
이윽고 1563년(명종 18) 공사가 시작되고, 만 2년만인 1565년(명종 20) 대구 최초의 서원인 연경서원이 완공된다. 창건 당시 연경서원의 건물은 모두 40여 칸이었다. 중앙에 정남향의 강당 인지당이 세워졌고, 그 앞 좌우로 동재 보인재와 서재 시습재가 건립되었다. 남문인 초현문의 서쪽에 동몽재를 두었고, 그 외에도 애련당 등 여러 건물들을 설치했다.
서원은 일반적으로 학문을 가르치고 배우는 강학 공간과 앞 시대의 뛰어난 선비들을 제사 지내는 제향 공간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연경서원은 처음 세워질 때 사당이 설립되지 않았다. 연경서원에 사당이 추가된 때는 개원 후 48년이나 지난 1613년(광해군 5)이었다.
연경서원은 사당 없이 출범한 교육기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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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경서원은 강학 공간만으로 출발한 특이한 서원이었다. 이는 대구 선비들이 연경서원 설립의 목적을 교육 기관 개설에 두었다는 사실을 증언한다. 구본욱은 논문 <연경서원의 경영과 유현(儒賢)들>에서 '(건립 당시에 사당이 없었던 것은) 연경서원이 선현을 추숭(追崇)하는 제향(祭享)보다는 강학(講學)에 중점을 두어 건립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라고 평가한다.
'연경(硏經)'은 한자 뜻만 풀이하면 '유교 경전 공부' 정도로 읽힌다. 그래서 연경이라는 단어는 문학적 비유가 녹아 있지도 않고, 자리잡고 있는 터에 서린 애환을 품고 있는 듯 여겨지지도 않는, 그저 딱딱한 느낌만 준다. 하지만 '연경서원'이라는 이름에는 그런 선입견과 정반대의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연경은 고려 태조 왕건의 옛일이 서려 있는 흥미로운 이름이다.
연경서원 이름에 얽힌 왕건의 옛일
927년, 포석정까지 진격하여 신라 경애왕을 죽인 후백제 견훤은 유유히 귀국 길에 올랐다. 신라를 돕기 위해 출전한 고려 태조 왕건은 먼 길 탓에 이제야 팔공산 아래에 닿았다. 머잖아 동화사 아래 좁은 골짜기에서 대혈투가 벌어질 시점이었다.
왕건은 잠시 짬을 내어 산책에 나섰다. 넘치는 여유를 감당 못해 한가로이 서성댄 행동은 물론 아니었고, 전투를 앞둔 만큼 지형 정찰과 민심 다독이기에 주목적이 있었다. 그런데 왕건은 금호강 인접 들판 마을에서도 노(老)련하게 농삿일을 해낼 남자 어른들을 볼 수 없었다(不). 모두들 전쟁터에 나간 탓이었다. '논밭을 잘 다스릴 장정들이 이렇게 없다니!' 하고 왕건은 탄식을 했다. 그 후 '불로(不老)'마을이라는 이름이 생겨났다.
▲대구광역시에 있지만 전원의 내음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연경마을의 2010년 모습. 그러나 이제는 찾아가도 이런 풍경은 볼 수가 없다. 아파트를 짓는다며 뒤로 보이는 도덕산 아래까지 몽땅 밀어버렸기 때문이다. ⓒ 정만진관련사진보기
반면, 동화천 너머 산속 마을의 풍경은 불로동과 달랐다. 왕건이 지나갈 때 집집마다 선비들의 책(經) 읽는(硏) 소리가 낭랑하게 울려나왔다. 왕건은 선비들의 학구적 태도에 감동했다. 그 이후 '연경'마을이라는 이름이 생겨났다.
연경서원은 이 연경마을이라는 이름에서 연유했다. 이숙량, 전경창 등 대구 선비들은 서원 이름을 정하면서 크게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동화천의 화암 인근에 설립된 서원이라고 해서 처음에는 화암서원이라 부르다가, 다시 연경서원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연경마을에 건립되는 서원에 연경서원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므로 애당초 어색할 것도, 어려울 것도 없었다. 게다가 연경 자체가 '유학 경전을 공부한다'는 의미였으니 서원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데에 아주 적합했다.
'연경' 딱딱한 단어이지만 서원 이름으로는 제격
서원 완공을 앞두고 이숙량은 스승 이황에게 기문(記文, 내력을 적은 글)을 부탁했다. 이황은 사양하면서 이숙량이 지은 기문을 그대로 쓰라고 했다. 그 대신 이황은 시와 '화암서원 기후(記後, 발문)'을 보내왔다. 한시 원문과 구본욱 번역문을 함께 읽어 본다.
畵巖形勝畵難成 화암의 빼어난 모습 그림으로 그리기 어려운데
立院相招誦六經 서원을 건립하여 함께 모여 육경(六經)을 공부하네
從此佇聞明道術 이를 쫓아 도술(道術)을 밝혔다는 소식 듣기를 기다리노니
可無呼寐得群醒 몽매한 뭇사람을 불러 일으켜 깨우침이 없겠는가
이황은 화암(畵巖)이 그린(畵) 듯 빼어난 바위(巖)이기 때문에 최고의 화가가 나서도 실물을 제대로 나타내기 어렵다고 노래했다. 사람이든 산수든 보통은 그림과 사진이 실물보다 더 멋진 법이지만, 화암 자체가 워낙 빼어난 천하 절경인 까닭에 아무리 뛰어난 시각예술 작가라 하더라도 본래 모습보다 더 아름답게 그려낼 수 없다는 것이 이황의 생각이었다.
이숙량도 <연경서원기>에 '화암은 연경서원의 서쪽을 지켜준다. 붉고 푸른 절벽이 우뚝하게 솟아 기이한 형상을 보여 그림 같이 아름다워 畵巖(화암)이란 이름을 얻게 되었다'라고 기록했다.
물론 화암은 하식애(河蝕涯)의 일종이다. 빙하기 이래 아득한 세월 동안 물(河)은 줄기차게 흘러 흙과 잔돌들을 깎아(蝕) 낮은 곳으로 쓸어내렸고, 이윽고 거대한 암석만 물가에 절벽(涯)으로 남게 되었다. 그런즉 하식애 일대는 자연스럽게 뛰어난 경치를 자랑하게 된다.
▲동화천에서 바라본 화암 쪽의 풍경 ⓒ 정만진관련사진보기
연경서원은 임진왜란 때 불에 타서 없어진다. 세워진 지 겨우 30년 만에 한 줌 재만 남기고 자취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그래도 전경창과 이숙량은 자신들이 앞장서서 건립한 연경서원이 그토록 허망하게 화염에 휩싸여 소멸되는 장면을 직접 보지는 않았다. 전경창은 임란 발발 7년 전인 1585년에 이미 세상을 떠났고, 이숙량은 전쟁이 터진 그 해 74세나 되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10월의 진주성 싸움에 참전했다가 진중에서 타계했기 때문이다.
이숙량은 <어부가>를 남긴 이현보의 아들로,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조목, 금응협 등과 함께 (임금이 있는) 북쪽을 바라보며 통곡한 후, 곧 창의를 독촉하는 격문을 써서 선비들에게 배포했다. 그의 격문에 호응하여 스스로 의병이 되어 영천성 전투에서 공을 세운 이간(李幹)은 임진년 당시 불과 17세에 지나지 않는 소년이었다. 이간은 이숙량의 제자였다.
임진왜란 유적으로 평가해도 충분한 연경서원
전경창은 이미 이승을 떠났지만 그의 제자들은 스승의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해 왜적과 맞서 싸우는 일에 적극 나섰다. 1592년 7월 6일 팔공산 부인사에서 대구 전역의 선비들과 의병 조직을 아우른 공산의진군(公山義陳軍)이 조직되었을 때, 첫 의병대장을 맡아 활동한 서사원, 그의 뒤를 이은 손처눌, 3대 의병대장 이주, 그리고 의병장 곽재겸 등이 모두 전경창의 제자였다는 사실은 이를 단적으로 증명해준다. 대구 의병장들은 대부분 연경서원에서 강학을 펼친 전경창, 정사철, 채응린 세 선비의 제자들이었다.
연경서원은 손처눌의 주도하에 1602년(선조 35) 중건되었다. 이때 모든 건물들을 한꺼번에 새로 짓지는 못하고 애련당만 건축하였다. 그래도 당시 53세이던 서사원은 '늘그막에 연경서원을 다시 찾을 수 있게 되니 감개가 무량하도다!' 하고 애련당 중건의 감격을 시로 써서 남겼다.
내가 이수(달성군 이천)에서 부들 같은 돛을 달고 배를 타고 올라 와
화전(畵田, 화암 아래)에 닻줄 매고 화암정사(연경서원)로 들어 왔네
당(堂)은 애련당부터 먼저 작게 지었는데
재(齋)에는 잡초가 무성하여 아직 다 베어내지 못했네
초현문과 양정당은 간절하지만 못 지어 이름만 남아 있고
몽매한 사람들을 깨치려니 나의 평범한 자질이 부끄럽네
늘그막에 거듭 찾으니 감개가 무량한데
바라건대 장차 한가한 날 서책을 보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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