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령도 여행기 (202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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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3-07-12 10:46 조회 93 댓글 0본문
오래도록 바라던 백령도 여행의 기회가 왔다. 안내문을 접수하는 즉시 참가 신청으로 경비 일부를 송금했다. 결국 나는 기회를 잡았는데 희망자가 많아 참가하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2023년 6월 13일부터 2박 3일의 여행길에 올랐다. 13일 새벽 6시에 출발하여 인천항연안여객터미널을 향해 달렸다. 시간 절약을 위해 아침 식사는 간이 도시락을 먹었다. 버스 타는 시간이 무려 5시간, 11시 직전 도착하여 ‘가덕도횟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12시 30분 인천과 백령도를 운항하는 코리아프린세스호를 타고 백령도를 향했다. 인천항이 시야에서 자취를 감추자 망망대해만이 사방에서 끝도 없이 펼쳐질 뿐이었다. 갈매기도 없고, 섬도 없고, 어선도 없었다. 오직 하늘과 바다만이 자신들의 세상을 자랑하듯 기세를 부렸다. 날씨가 좋아 파도도 잔잔하여 배가 흔들림 없이 바다를 헤치고 힘차게 전지하며 꼬리에는 하얀 물보라를 길게 뻗치며 잠깐동안 흔적을 바다에 남겼다. 그런데 그 하얀 흔적을 보니 배가 직선으로 달리는 것이 아니라 직선으로 가다 좌로 가고, 다시 우로 가기를 반복하는 것이었다. 배도 도로처럼 길이 정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15시 50분경 소청도에 도착하여 승객을 승하선하고 조금 더 가다 대청도에서 승객 승하선, 그리고 16시 30분, 정확히 4시간 만에 백령도에 도착하였다. 원래 도착하여 숙소를 정하고 저녁 먹는 것이 첫날 일과였는데 시간 여유가 있어 심청각을 관람하기로 했다.
‘까나리여행사’의 버스를 타고 가는 길에 우측 멀리 바다 너머 가로로 길게 산이 늘어서 있었는데 거기가 북한 땅이라고 하였다. 가까운 거리는 10여 Km밖에 안 된다고 하였다. 같은 땅을 지척에 두고도 가지 못하는 분단의 아픔이 절실히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심청각에 도착할 때는 16시 50분이 채 안 된 시간이었다. 심청각 건물이 날아갈 듯 날개를 활짝 펼치고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먼저 정원으로 갔다. 끝 쪽에서 바라보는 북한 땅은 더욱 가까이서 보였다. 중간쯤 어딘가에 인당수가 있다니 심청이 이야기가 떠오르기도 했다. 정원 중간쯤에 심청이가 몸을 던지기 직전에 치마를 올리는 모습이 동상으로 세워져 있었다. 동상 앞에서 단체 촬영을 하고 개인별로 촬영하느라 분주한 시간을 보냈다. 심청각 내부를 둘러보고 식당으로 갔다. 언덕에 자리 잡은 식당에서 순두부찌개로 저녁을 먹고 숙소로 향했다. ‘백령리조텔’이란 이름이 붙은 건물에 도착할 때는 오후 6시 경이었다. 이틀 밤을 잠잘 곳이었다. 나는 103호에 3명이 배정받아 여장을 풀었다. 그리고 희망자들만 모여 백령도 막걸리 맛을 보려고 식당을 찾아 나섰다. 한데 한참을 돌아다녀도 마땅한 식당이 없었다. 어쩌다 한 곳을 찾았는데 만원이었다. 의논 끝에 마트에서 막걸리를 구입하여 숙소 정원에서 마시며 기분을 풀자고 하였다. 마침 정원에 30여 명이 앉을 만한 간이 테이블이 마련되어 있었고, 손님도 우리 일행 외는 없었다. 22명(일행의 1/2이 모였음)이 오래도록 막걸리 마시며 정담을 나누고 나중에는 기분대로 노래도 흘러나왔다. 나도 노래를 불러 재창을 받았다. 기분 좋은 여행 중의 간이 파티였다. 이튿날 7시경 ‘아구와 콩나물’이란 간판이 붙은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관광길에 올랐다. 제일 먼저 간 곳은 ‘서해최북단백령도’라고 새겨진 비석이 있는 곳이었다. 날씨가 좋아서 북한 땅이 더욱 가까이서 인사를 했다. 무엇인가 슬픈 사연을 안고 있는 땅이라는 느낌이 들면서 마음이 무거웠다. 비석 앞에서 단체 촬영을 하고 개인별 촬영 시간을 가진 뒤 모두 정원에서 청소를 했다.
다음은 콩돌해안으로 가는데 버스 기사가 예쁜 돌을 가져가면 벌금, 징역을 받는다며 당부를 하는데 협박도 곁들인 것으로 생각되었다. 해안으로 들어가는 언덕에 간이 관리실이 있고, 길바닥에 콩돌로 ‘콩돌해안’이란 글자와 발바닥 모양을 만들어 놓고 보고 갈 수 있도록 해 놓고 있었다. 해안에 길게 늘어선 돌밭에 깔려 있는 콩돌의 모양이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색깔도 흰색, 희색, 갈색, 적갈색 등 다양했다. 맨발로 걷는 사람, 신을 신은 채 걷는 사람. 아예 앉아 돌과 이야기하며 쉬는 사람 등. 나는 신을 신고 한참을 걸었다. 발을 디딜 때마다 돌이 밀리며 발이 약간 빠져들어 갔다. 이 콩돌 해안의 길이가 800여 미터, 너비가 30여 미터라고 하는데 그 예쁜 콩돌이 어떻게 해서 만들어 졌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정말 자연의 조화가 무궁무진하다는 생각에 이 천연기념물 392호와 바닷물에 내 마음을 푹 담그고 왔다.
다음은 ‘사곶해변우수조망명소’로 갔다. 얕은 산길 따라 한참을 가다 작은 고개 넘어 조금 내려서니 멀리 바다와 백사장을 조망할 수 있는 간이 전망대가 나왔다. 백사장과 바다가 몸을 붙이고 길게 뻗어 있었다. 다시 버스를 타고 조금 가서 사곶해변에 직접 들어갔다. 이 모래사장은 석영으로 된 모래가 단단하게 굳어져 이루어진 곳으로 아무리 밟아도 발자국이 생기지 않고 자동차가 다녀도 된다고 하였다. 이 해변은 이탈리아의 나폴리와 더불어 세계에 두 곳밖에 없는데 이 해변을 천연기념물 제391호로 지정되었다고 하였다. 천연비행장으로 활용할 수 있어 6.25 전쟁 당시 실제 임시 활주로로 사용되기도 했다고 하였다.
다시 버스를 타고 해변을 따라 관람을 하고 나오는데 도로변에 철조망이 높게 쳐져있고 그 안에 갈매기 떼들이 아주 많았다. 그곳은 사람들의 출입 할 수 없는 구역이라 갈매기들의 안식처요 그들만의 천국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구경을 하고 촬영하였다. 우리 인간들이 갈매들에게도 자유를 제한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간 곳은 백령도특산물직매장으로 갔다. 백령도에는 싸주아리라는 약쑥이 건강에 좋다고 하며 직접 재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거기다 하수오가 많아 이들을 건강식품으로 만들어 판매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가격이 10만 원 단위가 넘어 구입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다음은 용기포 등대해변으로 갔다. 규암이 풍화와 침식작용으로 생긴 다양한 지질 구조를 볼 수 있는 곳이었다. 백령도는 전체가 지질공원으로 인정되었다고 한다. 이곳에는 마치 책을 많이 쌓아 올린 것 같은 바위가 마치 탑처럼 생겨 보는 이들의 시선을 끌었고 그를 배경으로 사진 촬영을 많이 했다.
점심 먹을 시간 ‘두메 칼국수’라는 간판의 식당으로 들어갔다. 백령도 특별 메뉴라는데 ‘짠지떡’(메밀, 찹쌀로 반죽하여 반달 모양으로 빚어 김치, 굴로 소를 채운 떡)과 메밀 칼국수를 먹었다. 이 짠지떡은 이름도 처음이고 먹기도 처음이었다. 특별한 이름에 비하여 맛은 별로라는 생각을 했다. 이것도 조금더 개선하여 부드럽고 소를 현대인들에 맞게 만들어 넣으면 인기 있는 식품(제주도 오메기떡)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먹고 간 곳은 ‘몽운사’였다. 이 절은 역사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하는데 여러 가지 발우를 전시한 것이 특징이라고 했다. 절 마당에 스님들이 공양할 때 사용하는 대형 발우가 안치되어 있었는데 너무 커서(높이 1.8m, 너비 3.2m, 둘레 10.08m) 계단을 올라 발우 안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그 안에는 부처님상, 스님들의 공양 모습을 조각한 작품들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발우 겉에 ‘행복을 만드는 그릇’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는 것으로 봐서 그 발우를 보면서 행복한 마음을 가지라는 뜻이 담겨져 있는 듯 했다. 정원 한 곳에 특이하게 자물쇠를 하나하나 붙여서 만든 하얀 코끼리 모형이 눈길을 사로잡아 사진 촬영을 했다. 법당 안으로 들어가니 법당 안 좌우 벽 쪽의 진열대에 여러 가지 조각품들이 있었는데 모양이 특이한 각국의 발우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절 외부는 정리를 해 나가는 중이었다.
다음은 교회로 갔다. 절을 가 봤으니 교회도 가 봐야 하는 걸까. ‘소래교회’라는데 우리나라 최초(1884년 설립)의 교회라는 것이다. 어째서 이곳에 최초로 교회가 세워졌을까 궁금했는데 사연이 있었다. 그 내용은 입구 간판에 설명되어 있었다.
다음은 천안함 46용사 위령탑으로 갔다. 주차장에서 오르막 산길을 제법 걸어 올라가서 위령탑을 만났다. 2010년 3월 26일 밤 9시 22분, 백령도 남서쪽 약 1km 지점에서 포항급 초계함인 PCC-772 천안함이 초계임무 수행 도중 북한 해군 잠수정의 어뢰에 공격당해 선체가 반파되며 침몰하였다. 피격 후, 58명이 현장에서 구조되었으며 46명이 전사한 뼈아픈 사건이다. 전사한 46용사들을 기리기 위한 탑이 높게 솟아있고 기단에 46용사들의 사진과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우리는 주차장에 팔고 있는 국화를 한 송이씩 가지고 온 것을 헌화하고 모두 묵념으로 그들의 명복을 빌었다. 휴전 이후 저들이 저지른 만행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았고 그 행태도 극악무도한 짓들이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하는 노래 가사가 머리를 스치며 언제나 통일이 올 것인지 무거운 마음을 안고 산길을 내려와야 했다.
다음 간곳은 두무진인데 이 두무진은 워낙 경치가 좋아 육상으로 관람하는 코스와 바다에서 관람하는 코스의 두 가지가 있어 먼저 육상의 관람로를 따라 걸어갔다. 우측으로 바다를 끼고 가다 산자락의 숲속으로 올라가니 묘한 모습으로 나를 부르는 바위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들은 구경하고 감상하기에 벼랑이라 위험한 지역이었다. 마침 안전을 위해 데크길을 만들고 전망대도 만들어 안전하게 다니며 구경할 수 있었다. 관람로 마지막 지점에서 바다와 바위와 산, 하늘을 조망하고 단체로 기념촬영을 하고 내려왔다. 약 30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일행을 확인하고 선착장으로 가서 예약된 유람선을 탔다. ‘백령 1호’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정원은 98명이었다. 출발 시간은 오후 4시 20분경. 유람선은 고요한 바다를 가르며 두무진의 절경을 찾아 미끄러져 흘렀다. 이 두무진(頭武鎭)의 이름은 하늘로 쭉쭉 뻗은 바위들이 모여있는 해안가인데 용맹한 장군들이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하는 것 같은 모양이라 해서 두무진이라 불린다. 또한 뾰족한 바위들이 많아 생긴 모양이 마치 머리털 같다고 하여 두모진(頭毛鎭)이라 부르다가 후에 장군머리 같은 형상이라 하여 두무진으로 개칭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오랫동안 파도에 의해 이루어진 병풍같이 깎아지른 듯한 해안 절벽과 가지각색의 기암괴석이 4Km에 걸쳐 연달아 나타나서 보는 이들의 입에서 감탄사가 계속 흘러나오도록 하였다. 그 오묘한 바위들의 모습들이 금강산의 만물상과 비견되어 서해의 해금강이라 불린다고 하는데 1997년 12월 30일에 명승 8호로 지정되어 백령도 관광에서 필수 코스가 되어 있었다. 선장의 해설도 물보라가 흘러가듯 구수하게 흘러 나왔다. 늙은 신의 마지막 선물이라고 평가받는 선돌 바위를 포함, 천연기념물인 물범이 서식하는 물개 바위, 장군 모습의 장군바위, 코끼리 바위, 선대암, 형제바위, 부처바위, 심청이 잠수함 등의 이름을 달고 눈을 즐겁게 했다. 깎아지른 높은 절벽에 작은 건물(움막, 초소…)이 아슬아슬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군인들의 초소라고 하는데 거기에 사람이 어떻게 들어가는지가 몹시 궁금했는데 군사비밀이라 알 수 없다고 하였다. 물범바위를 지나갈 때 물범(참고 자료에서 백령도 마스코트인 점박이물범이라고 함)들이 머리를 내밀며 인사를 하는 듯 했는데 모두들 한번 더 그들을 보려고 창가로 몰려 법석을 떨었다. 정신없이 바위 구경에 몰입하고 있는데 잠수함이 물 위에 떠 있는 모양의 바위가 있었다. 그 바위를 ‘심청이 타고 온 잠수함’이라는 선장의 유머도 있었다. 약 50분에 걸쳐 유람선 관광을 마치고 선착장과 마주하고 있는 대성횟집으로 들어갔다. 오늘 저녁 식사는 푸짐하게 회를 준비했고, 양주, 배갈, 담금주 등 여러 가지 술이 등장하였고, 백령도의 마지막 저녁이고 분위기가 좋아 회도 많이 먹었고, 술도 많이 마셨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와 20시경 숙소 정원에 모여 백령도에서의 마지막 시간을 신나게 장식하였다. 애타게 기회 오기만을 기다렸던 백령도 여행, 이제 다시 올 기회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아쉬움과 멋진 분위기의 흥취가 교차하면서 나를 취하게 만든 백령도의 밤이었다.
3일째(15일) 마지막 날이다. 오늘의 일과가 빡빡하다. 07시 배를 타고 30분 후에 대청도에서 내렸다. 그리고 ‘아가페, 펜션&식당’에서 아침을 먹었다. 먼저 간 곳은 옥죽동 모래사막이었는데 주차장에 내리니 여자 해설자가 대기하고 있었다. 설명을 들으며 ‘하늘숲길’이란 안내판을 지나 숲길을 조금 지나니 넓은 사막이 전개되었다. 모래를 밟으며 한참을 걸어가니 낙타(조각품)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단체촬영을 하고 자유시간. 자기 반원끼리, 친구끼리, 또는 혼자서 낙타와 벗하여 사진을 많이 촬영하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해설자의 설명에 의하면 이곳 사막의 모습이 바람에 따라 수시로 바뀐다고 하였다. 그래서 지금은 방사림을 조성했다고 하였다. 한데 이곳에 어떻게 모래가 많은지 궁금할 뿐이었다.
다음 간 곳은 ‘농여해변(대청1경)’으로 갔다. 바위가 층층이 포개져 주름 잡힌 것 같기도 하고 나이테 같기도 하고, 고목나무가 썩어가는 모습 같기도 했다. 그래서 ‘나이테바위’ 또는 ‘고목바위’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이 바위를 배경으로 앞과 뒤에서 사진을 많이도 촬영했다. 거기서 계속 이어진 해변이 ‘미아동해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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