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어사 답사 자료/ 2024.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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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유정 작성일 24-11-21 13:35 조회 2 댓글 0본문
일시: 2024년 11월19일(화)08시~
답사 장소: 오어사
주소:경북 포항시 남구 오천읍 오어로1(오천읍
항사리34) 거리:70km
형산강 이남의 진산(鎭山) 운제산(雲梯山)오어사(吾魚寺)는 보경사와 함께 포항을 당시는 항사사(恒沙寺)라 하였다.
그러나 산에 불이 나면서 항사사(恒沙寺)는 전소 되었다.
신라 4대 조사를 배출한 불교의 성지다.
절의 원래 명칭은 항사사
(恒沙寺) 였다,
항사(恒沙)는 항하(恒河)의 준말로 불경에 나오는 인도 갠지스강을 가리킨다.
즉 항하(恒河)는 갠지스강의 모래알처럼 무수함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절에서 많은 수행자가 나오기를 바라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
일연의 삼국유사’를 보면 운제산 오어사의 명칭에 관한 이야기와 수행한 고승들의 이야기가 여러 대목에 등장한다.
그(혜공)는 늘그막에 항사사로 옮겨 살았다.
이때 원효는 여러 불경의 소(疎)를 지으면서 항상 혜공을 찾아가 의심나는 것을 묻고, 가끔씩 서로 말장난을 하기도 했다.
어느날 원효와 혜공이 서로의 법력을 시험 시냇가에서 물고기와 새우를 잡아 먹고 방변 하였는데 그 중 한마리가 살아서 힘차게 헤엄쳐 가는 모습을 혜공이 가리키며 말했다.
혜공은 법력이 원효보다 우의 였던것 같다.
여시오어[汝屎吾魚]라는 설에 의해 절 이름을 오어사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3
항사(恒沙)가 불가(佛家)의 전형적인 표현 이라면 오어’는 파격적인 유쾌한 농담조다.
결국은 여시오어(汝屎吾魚)로 귀결되는 가벼운 농담에 깊은 가르침의 화두가 담겨 있는 것이다.
■■남북국시대(南北國時代)는 698년 발해가 건국될 때부터 926년 후삼국이 통일될 때까지 시기이며 신라를 남국, 발해를 북국이라 칭한다 과거에는 통일신라시대라고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도 우리나라이므로 남북국시대로 불린다
원효대사(元曉大師)는 신라의 고승이자 사상가로 경상도 경산에서 태어났고 속명은 설사(薛思)이며 별명은 소성거사(小姓居士)
이다. 신라십성(新羅十聖)중 한 명이다. 고려시대 숙종에 의해 대성화쟁국사(大聖和諍國師)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성인(聖人)이란 덕과 지혜가 뛰어나고 사리에 정통하여 모든 사람이 길이 우러러 받들고 모든 사람의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이다.
역사상 위대한 성인의 삶과 사상은 후세 사람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오어사의 대표 문화재는 대웅전 (경북문화재88호)이다.
대웅전,외에 나한전, 설선당, 산령각 등이 있지만 대웅전을 제외한 건물들은 모두 최근에 건립된 것이다.
대웅전은(정면 3칸, 측면2칸) 팔작지붕 다포(多包)로 조선 영조17년(1741)중건 되었다.
■오어사 범종은1998년 국가 보물 제1280호 로 지정 되었다. 이 범종은 높이 93.5㎝. 몸체에 새겨진 명문에 동화사(桐華寺)스님들이 공동 으로 발원300(삼백근)근의 중량을 들여 정우(貞祐)4년 즉1216년(고종3)에 대장
(大匠) 순광(順光)이 만들었다 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ㅡ일연 스님이 추앙했던ㅡ
"성사(聖師) 원효"
신라의 고승 원효의 속성은 설(薛)씨다. 원효의 출생은 617년.~.원래 이름은 설서당으로 설총의 아버지다. 설총(薛聰)은 신라의 대 유학자로 설총의 호는 빙월당 이다. 설총은 한글 이전 고대 한국어의 표기법인 이두(吏讀) 를 집대성 했으며 신라에 유교를 확립시킨 유학자로 신라10현에 속한다.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 스님은 원효불기(元曉不羈) 조에서 스님을 성사(聖師)
라고 추앙했다.
화엄을 전한 의상 대사를 법사 (法師)계율을 정한 자장대사를 율사(律師)로 칭한 것과 대조된다.
설총은 나면서 부터 재주가 많고 경사(經史)와(사기)에 박통(博通) 했으며, 우리말로 구경(九經)을 읽고 후생을 가르쳐 유학의 종주가 되었고 신라10현(新羅十賢)이기도 한 설총(薛聰)은 앞선 세대의 강수(强首)와 최치원(崔致遠) 이 함께 신라 3문장(新羅三文章)으로 손꼽힌다고 한다.
원효가 하루는 거리에서 "누가 자루 없는 도끼를 내게 주겠 는가? 내가 하늘을 받칠 기둥을 깎을 것이라 수허몰가부
(誰許沒柯斧)라고 노래했다.
보통 사람들은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 했으나, 태종 무열왕은 이 노래를 전해듣고 원효가 나라에 크게 쓰일 인재를 낳고자 함을 알고 과부였던 둘째 딸 요석공주
(瑤石公主)를 원효와 이어 주었다.
요석공주: 신라 태종 무열왕의 딸로 문무왕의 누이며 설총의 어머니다.
원효는 "요석공주"와의 사이에 후일 대학자가 된 "설총(薛聰)"이라는 아들을 두었다. 원효는 요석 공주와의 잠자리로 계를 어긴 후에는 스스로 소성거사(小姓居士)라 자칭 하면서 지방의 촌락과 길거리를 두루 돌아 다니며 바가지를 두드리고(화엄경)의 모든 것에 걸림 없는 사람이 한 길로 생사를 벗어났도다"라는 구절로 노래를 지어 부르면서 가무와 잡담 중에 불법을 널리 알려 일반 서민들의 교화에 힘을 기울였다.
그가 스스로 소성거사라 부른 것은 실계로 인한 속죄의 한 방법 이었다기 보다는 오히려 대중교화의 방편으로 보았던 것으로 짐작된다.
이는 "대중교화의 선구자인" "혜공"이 등에 삼태기를 지고 길거리에서 대취하여 노래하고 춤추었던 것이나 대안이 특이한 옷차림으로 장(場)판에서 동발(銅鉢)을 치면서 외친 것과 같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원효는 대중교화의 행적을 마친 뒤에는 다시 소성거사 아닌 원효 화상으로 돌아가 혈사
(穴寺)에서 70세의 나이로 생애를 마쳤다.
686년(신문왕 6)혈사(穴寺) 에서 죽었다.
절터에는 1962년.국보로 지정된 고선사지 삼층 석탑과 석등대석(石燈臺石)귀부(龜趺)등이 있었지만 1975년 "덕동댐"공사로 수몰 지구로 모두 국립경주 박물관으로 이전되었다.
창건 이후(오어사)의 역사는 전래되지 않고 있다. 다만, 유적에 의하면 자장(慈藏)과 혜공·원효·의상(義湘)의 네 조사(祖師)가 이 절과 큰 인연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즉, 절의 북쪽에 자장암과 혜공암, 남쪽에 원효암 서쪽에 의상암 등의 수행처가 있었으므로 이들 네 조사의 행적과 연관짓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나한전(羅漢殿) 설선당(禪堂) 칠성각·신령각 등이 있다. 이 중 대웅전을 제외한 당우들은 모두 최근에 건립된 것이다. 이 절의 대표적인 유물로는 대웅전 안에 보관되어
있는 원효대사의 삿갓이다.
이 밖에도 절내에는 불계비문(佛契碑文) 염불계비문(念佛契碑文)
운제산 단월발원비문
(雲梯山檀越發願碑文)등과 부도가 있다.
현존하는 부속암자로는 자장암과 원효암이 있으며, 오어사 앞의 저수지와 홍계 폭포, 기암절벽 등의 경치가 일품이다.
ㅡ 스페이스 워커 ㅡ
포항에는 "환호공원" 내에 "스페이스 워크"가 위치해 있다.
■스페이스 워크는 "우주 공간을 헤엄치는 듯한 즐거움을 선사"한다는 뜻'이 있다고 한다.
트랙길이 333m,계단 개수 717개 규모로 만들어 진 스페이스워크 철로 그려진 우아한 곡선과 밤하늘을 수놓는 조명은 철과 빛의 도시 포항을 상징하며,360
도로 펼쳐져 있는 전경을 내려다 보면 포항의 아름다운 풍경과 제철소의 찬란한 야경 그리고 영일만의 일출, 일몰을 감상할 수 있다고 한다.
스페이스 워크는“독특하고 흥미로우며 방문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19개의 계단은 관객의 경험을 통해 완성되는 참여형 작품으로 꾸준히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가 되고 있다.
방문하기 전 주의할 점으로 강우나 강풍이 불 경우 출입이 통제되니 사전에 확인하는 것을 추천 한다.
약간의 바람에도 흔들흔들 짜릿한 포항제철과 포항
앞 바다를 전망할 수 있는 곳으로 포항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포항제철에서 사회 환원의 취지로 기증한 스페이스 워크의 총길이는 333m 이며 717개의 계단으로 구성된 조형물로 날씨에 따라 이용시간의 제한이 있다고 한다.
ㅡ 연오랑 세오녀 공원 ㅡ
신라 제8대 아달라왕(즉위 4년)동해 바닷가에 연오랑과 세오녀 부부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남편 연오랑이 미역을 따러 올라선 바위가 움직이더니, 연오랑을 싣고 흘러간 바위는 일본에 가서야 멈췄다.
연오랑을 본 일본 사람들은 이를 신으로 여기고 왕으로 섬겼다고 한다.
남편을 찾던 세오녀가 바위에 오르자 남편 연오랑 처럼 세오녀를 실은 바위도 일본을 향해 떠나자 신라는 해와 달이 빛을 잃고 만다.
해와 달의 정기가 연오랑 부부를 따라 일본으로 넘어 갔다는 말에"신라의 아달라왕"은 일본으로 사신을 보내 두 사람을 보내 달라 요청 했는데 연오랑은 하늘의 뜻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하면서 세오녀가 직접 짠 고운 비단을 사신에게 주며 신라로 돌아가 이 비단 으로 제사를 지내 달라고 했다. 그의 말대로 제사를 지내니 다시 해와 달이 빛났다고 한다. 이때 제사를 지낸 곳이 영일현 이라고 한다.
연오랑과 세오녀의 이동으로 해와 달이 빛을 잃었다가 세오녀가 준 비단 제사로 다시 광명을 회복했다는 일월지의 전설과 자취는 지금도 영일만에 남아 있다고 한다.
삼국유사에 수록된 설화와 전설은 고려 이전 문헌인" 수이전"에도 실려 있다고 한다.
연오랑과 세오녀 테마공원도 설치되어 있어 당시 부부가 살았던 마을 재현과 귀비고등 흥미로운 즐길꺼리 많은 포항에서 새롭고 행복한 시간 되시면 좋겠습니다.
예기 들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끝
경북 포항시 남구 동해면 호미로 3012
문화공원. 054-289-7955.
운영시간 : 10시 ~ 18시
입장료: 무료. 주차: 무료. 끝
답사 장소: 오어사
주소:경북 포항시 남구 오천읍 오어로1(오천읍
항사리34) 거리:70km
형산강 이남의 진산(鎭山) 운제산(雲梯山)오어사(吾魚寺)는 보경사와 함께 포항을 당시는 항사사(恒沙寺)라 하였다.
그러나 산에 불이 나면서 항사사(恒沙寺)는 전소 되었다.
신라 4대 조사를 배출한 불교의 성지다.
절의 원래 명칭은 항사사
(恒沙寺) 였다,
항사(恒沙)는 항하(恒河)의 준말로 불경에 나오는 인도 갠지스강을 가리킨다.
즉 항하(恒河)는 갠지스강의 모래알처럼 무수함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절에서 많은 수행자가 나오기를 바라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
일연의 삼국유사’를 보면 운제산 오어사의 명칭에 관한 이야기와 수행한 고승들의 이야기가 여러 대목에 등장한다.
그(혜공)는 늘그막에 항사사로 옮겨 살았다.
이때 원효는 여러 불경의 소(疎)를 지으면서 항상 혜공을 찾아가 의심나는 것을 묻고, 가끔씩 서로 말장난을 하기도 했다.
어느날 원효와 혜공이 서로의 법력을 시험 시냇가에서 물고기와 새우를 잡아 먹고 방변 하였는데 그 중 한마리가 살아서 힘차게 헤엄쳐 가는 모습을 혜공이 가리키며 말했다.
혜공은 법력이 원효보다 우의 였던것 같다.
여시오어[汝屎吾魚]라는 설에 의해 절 이름을 오어사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3
항사(恒沙)가 불가(佛家)의 전형적인 표현 이라면 오어’는 파격적인 유쾌한 농담조다.
결국은 여시오어(汝屎吾魚)로 귀결되는 가벼운 농담에 깊은 가르침의 화두가 담겨 있는 것이다.
■■남북국시대(南北國時代)는 698년 발해가 건국될 때부터 926년 후삼국이 통일될 때까지 시기이며 신라를 남국, 발해를 북국이라 칭한다 과거에는 통일신라시대라고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도 우리나라이므로 남북국시대로 불린다
원효대사(元曉大師)는 신라의 고승이자 사상가로 경상도 경산에서 태어났고 속명은 설사(薛思)이며 별명은 소성거사(小姓居士)
이다. 신라십성(新羅十聖)중 한 명이다. 고려시대 숙종에 의해 대성화쟁국사(大聖和諍國師)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성인(聖人)이란 덕과 지혜가 뛰어나고 사리에 정통하여 모든 사람이 길이 우러러 받들고 모든 사람의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이다.
역사상 위대한 성인의 삶과 사상은 후세 사람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오어사의 대표 문화재는 대웅전 (경북문화재88호)이다.
대웅전,외에 나한전, 설선당, 산령각 등이 있지만 대웅전을 제외한 건물들은 모두 최근에 건립된 것이다.
대웅전은(정면 3칸, 측면2칸) 팔작지붕 다포(多包)로 조선 영조17년(1741)중건 되었다.
■오어사 범종은1998년 국가 보물 제1280호 로 지정 되었다. 이 범종은 높이 93.5㎝. 몸체에 새겨진 명문에 동화사(桐華寺)스님들이 공동 으로 발원300(삼백근)근의 중량을 들여 정우(貞祐)4년 즉1216년(고종3)에 대장
(大匠) 순광(順光)이 만들었다 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ㅡ일연 스님이 추앙했던ㅡ
"성사(聖師) 원효"
신라의 고승 원효의 속성은 설(薛)씨다. 원효의 출생은 617년.~.원래 이름은 설서당으로 설총의 아버지다. 설총(薛聰)은 신라의 대 유학자로 설총의 호는 빙월당 이다. 설총은 한글 이전 고대 한국어의 표기법인 이두(吏讀) 를 집대성 했으며 신라에 유교를 확립시킨 유학자로 신라10현에 속한다.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 스님은 원효불기(元曉不羈) 조에서 스님을 성사(聖師)
라고 추앙했다.
화엄을 전한 의상 대사를 법사 (法師)계율을 정한 자장대사를 율사(律師)로 칭한 것과 대조된다.
설총은 나면서 부터 재주가 많고 경사(經史)와(사기)에 박통(博通) 했으며, 우리말로 구경(九經)을 읽고 후생을 가르쳐 유학의 종주가 되었고 신라10현(新羅十賢)이기도 한 설총(薛聰)은 앞선 세대의 강수(强首)와 최치원(崔致遠) 이 함께 신라 3문장(新羅三文章)으로 손꼽힌다고 한다.
원효가 하루는 거리에서 "누가 자루 없는 도끼를 내게 주겠 는가? 내가 하늘을 받칠 기둥을 깎을 것이라 수허몰가부
(誰許沒柯斧)라고 노래했다.
보통 사람들은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 했으나, 태종 무열왕은 이 노래를 전해듣고 원효가 나라에 크게 쓰일 인재를 낳고자 함을 알고 과부였던 둘째 딸 요석공주
(瑤石公主)를 원효와 이어 주었다.
요석공주: 신라 태종 무열왕의 딸로 문무왕의 누이며 설총의 어머니다.
원효는 "요석공주"와의 사이에 후일 대학자가 된 "설총(薛聰)"이라는 아들을 두었다. 원효는 요석 공주와의 잠자리로 계를 어긴 후에는 스스로 소성거사(小姓居士)라 자칭 하면서 지방의 촌락과 길거리를 두루 돌아 다니며 바가지를 두드리고(화엄경)의 모든 것에 걸림 없는 사람이 한 길로 생사를 벗어났도다"라는 구절로 노래를 지어 부르면서 가무와 잡담 중에 불법을 널리 알려 일반 서민들의 교화에 힘을 기울였다.
그가 스스로 소성거사라 부른 것은 실계로 인한 속죄의 한 방법 이었다기 보다는 오히려 대중교화의 방편으로 보았던 것으로 짐작된다.
이는 "대중교화의 선구자인" "혜공"이 등에 삼태기를 지고 길거리에서 대취하여 노래하고 춤추었던 것이나 대안이 특이한 옷차림으로 장(場)판에서 동발(銅鉢)을 치면서 외친 것과 같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원효는 대중교화의 행적을 마친 뒤에는 다시 소성거사 아닌 원효 화상으로 돌아가 혈사
(穴寺)에서 70세의 나이로 생애를 마쳤다.
686년(신문왕 6)혈사(穴寺) 에서 죽었다.
절터에는 1962년.국보로 지정된 고선사지 삼층 석탑과 석등대석(石燈臺石)귀부(龜趺)등이 있었지만 1975년 "덕동댐"공사로 수몰 지구로 모두 국립경주 박물관으로 이전되었다.
창건 이후(오어사)의 역사는 전래되지 않고 있다. 다만, 유적에 의하면 자장(慈藏)과 혜공·원효·의상(義湘)의 네 조사(祖師)가 이 절과 큰 인연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즉, 절의 북쪽에 자장암과 혜공암, 남쪽에 원효암 서쪽에 의상암 등의 수행처가 있었으므로 이들 네 조사의 행적과 연관짓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나한전(羅漢殿) 설선당(禪堂) 칠성각·신령각 등이 있다. 이 중 대웅전을 제외한 당우들은 모두 최근에 건립된 것이다. 이 절의 대표적인 유물로는 대웅전 안에 보관되어
있는 원효대사의 삿갓이다.
이 밖에도 절내에는 불계비문(佛契碑文) 염불계비문(念佛契碑文)
운제산 단월발원비문
(雲梯山檀越發願碑文)등과 부도가 있다.
현존하는 부속암자로는 자장암과 원효암이 있으며, 오어사 앞의 저수지와 홍계 폭포, 기암절벽 등의 경치가 일품이다.
ㅡ 스페이스 워커 ㅡ
포항에는 "환호공원" 내에 "스페이스 워크"가 위치해 있다.
■스페이스 워크는 "우주 공간을 헤엄치는 듯한 즐거움을 선사"한다는 뜻'이 있다고 한다.
트랙길이 333m,계단 개수 717개 규모로 만들어 진 스페이스워크 철로 그려진 우아한 곡선과 밤하늘을 수놓는 조명은 철과 빛의 도시 포항을 상징하며,360
도로 펼쳐져 있는 전경을 내려다 보면 포항의 아름다운 풍경과 제철소의 찬란한 야경 그리고 영일만의 일출, 일몰을 감상할 수 있다고 한다.
스페이스 워크는“독특하고 흥미로우며 방문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19개의 계단은 관객의 경험을 통해 완성되는 참여형 작품으로 꾸준히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가 되고 있다.
방문하기 전 주의할 점으로 강우나 강풍이 불 경우 출입이 통제되니 사전에 확인하는 것을 추천 한다.
약간의 바람에도 흔들흔들 짜릿한 포항제철과 포항
앞 바다를 전망할 수 있는 곳으로 포항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포항제철에서 사회 환원의 취지로 기증한 스페이스 워크의 총길이는 333m 이며 717개의 계단으로 구성된 조형물로 날씨에 따라 이용시간의 제한이 있다고 한다.
ㅡ 연오랑 세오녀 공원 ㅡ
신라 제8대 아달라왕(즉위 4년)동해 바닷가에 연오랑과 세오녀 부부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남편 연오랑이 미역을 따러 올라선 바위가 움직이더니, 연오랑을 싣고 흘러간 바위는 일본에 가서야 멈췄다.
연오랑을 본 일본 사람들은 이를 신으로 여기고 왕으로 섬겼다고 한다.
남편을 찾던 세오녀가 바위에 오르자 남편 연오랑 처럼 세오녀를 실은 바위도 일본을 향해 떠나자 신라는 해와 달이 빛을 잃고 만다.
해와 달의 정기가 연오랑 부부를 따라 일본으로 넘어 갔다는 말에"신라의 아달라왕"은 일본으로 사신을 보내 두 사람을 보내 달라 요청 했는데 연오랑은 하늘의 뜻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하면서 세오녀가 직접 짠 고운 비단을 사신에게 주며 신라로 돌아가 이 비단 으로 제사를 지내 달라고 했다. 그의 말대로 제사를 지내니 다시 해와 달이 빛났다고 한다. 이때 제사를 지낸 곳이 영일현 이라고 한다.
연오랑과 세오녀의 이동으로 해와 달이 빛을 잃었다가 세오녀가 준 비단 제사로 다시 광명을 회복했다는 일월지의 전설과 자취는 지금도 영일만에 남아 있다고 한다.
삼국유사에 수록된 설화와 전설은 고려 이전 문헌인" 수이전"에도 실려 있다고 한다.
연오랑과 세오녀 테마공원도 설치되어 있어 당시 부부가 살았던 마을 재현과 귀비고등 흥미로운 즐길꺼리 많은 포항에서 새롭고 행복한 시간 되시면 좋겠습니다.
예기 들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끝
경북 포항시 남구 동해면 호미로 3012
문화공원. 054-289-7955.
운영시간 : 10시 ~ 18시
입장료: 무료. 주차: 무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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