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오 고문님의 고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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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5-04-03 10:28 조회 65회 댓글 0건본문
이 글은 문지회 창립을 주도, 초창기 부회장을 맡았고, 팀활동 등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여 직접 육필로 쓴 자료를 복사하여 팀원들에게 해설하는 등 가정적으로 어려운(2024년 부인 작고) 가운데서도 문지회 발전에 헌신하신 김규오 고문님이 수1팀과 임원진을 모시고 따뜻한 밥 한끼를 사시며, 이제 나이(90세)도 많아 힘에 부쳐서 공식활동은 중단한다는 고별사를 육필로 써 오셨기에 많은 회원이 볼 수 있도록 여기에 올립니다.(柱潤)
고별사
4계절은 연년이 찾아오나 인생의 4계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 울면서 세상에 태어나 100세를 살다가 말없이 눈을 감고 웃음으로 영원한 행복의 나라로 떠나는 것이 인생입니다. 일제시대에 태어나 해방을 맞고, 좌우의 대결이 치열했던 시대를 맞을 무렵 6.25전쟁과 4.19 민주화운동, 5.16 군사쿠테타 이후 주린 배를 채우고, 세계로 진출하던 시대에 10.26으로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였고, 12.12 군사반란으로 다시 군정이 시작되었으나 1987년 민주화가 되었다. 문민정부에서 IMF를 맞아 금모으기 운동으로 극복하였다. 지금까지 13대 대통령을 거쳤는데 온국민의 추앙을 받는 대통령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동안 나는 교직을 천직으로 삼아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 없는 삶으로" 산다고 자부했다. 1998년 정년 후 경북대 노인대학 3년을 수료하고, 노인지도교사자격증, 자원봉사강사자격증을 획득한 후 지금까지 먹고 살기 위해 온갖 일을 일요일도 없이 열심히 하였다. 왜냐하면 연금을 일시 불로 받아 두 아들을 IMF에서 구하는데 썼기 때문이다.
대구광역시자원봉사센터 문화봉사단에 입단하여 골목문화해설사, 그뒤 중구시니어클럽문화유산해설사, 해체후 중구골목문화해설사, 해체 후 대구문화재지킴이 단체를 구성하여 오늘날까지 18년을 이어오고 있다.
오늘 마지막으로 회원님들께 인사를 드리고 모든 회원의 박수를 받으며 떠나지 못함이 아쉽기도 하며, 더 많은 도움을 드리지 못함을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제가 떠나더라도 건강한 몸으로 문화재지킴이회를 지켜 주시기 바랍니다. 인생의 선배로서 몇가지 부탁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지구상의 모든 동식물은 그 생명이 유한합니다. 박수받고 태어나 죽을 때도 박수받고 갔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첫째, 건강하게 사십시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내 건강은 내가 지켜야 합니다. 규칙적 생활, 소식, 운동, 검진 등 열심히 합시다.
둘째, 자주할 수 있는 경제력, 남에게 도움을 받지 않을 정도의 경제력를 죽는 날까지 가집시다.
셋째, 웰다잉 준비를 스스로 해야 합니다. 생전에 재산정리, 본인주변(의복, 신발, 사용기기,장기기증, 연명신고, 시신 기증 등) 정리를 합시다.
넷째, 노인이 아닌 어르신의 칭호를 받으세요. 용모단정, 좋은 말씨, 건전한 친구와 더불어.
다섯째,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자원봉사 등, 모든 생활의 근본은 마음 먹기 나름.
*궁극적으로 우리는 행복하게 사는 것이 최고의 삶입니다. 행복에도 물질적인 것, 정신적인 것이 있습니다. 건강한 몸으로 모든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남에게 도움을 주는 즐거운 생활을 하는 것이 행복입니다.
항상 물처럼 생활하는 사람으로 살아 가기기 바랍니다. 물은 아래로 흐르고, 부딪히면 돌아가고, 막히면 넘어가고, 작으나 크나 색깔이 다르나 모이면 하나가 되는 화합으로.
2025년 3월 5일
이글은 옮기는 과정에서 부분 수정을 했습니다.(주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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