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박중양의 것으로 판명된 서예 작품 ‘일반시국은’. 국립중앙박물관 상설관 1층 기획전 ‘우리들의 밥상’ 전시장에 애국지사 박원근의 것으로 표기되어 내걸려 있던 당시의 모습이다. 이 작품은 개막 뒤 1달 이상 전시됐다가 친일파의 것이란 제보가 들어온 뒤 내려졌다.(왼쪽) 오른쪽 사진은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 국립중앙박물관, 한국표준협회 제공
친일파 박중양의 것으로 판명된 서예 작품 ‘일반시국은’. 국립중앙박물관 상설관 1층 기획전 ‘우리들의 밥상’ 전시장에 애국지사 박원근의 것으로 표기되어 내걸려 있던 당시의 모습이다. 이 작품은 개막 뒤 1달 이상 전시됐다가 친일파의 것이란 제보가 들어온 뒤 내려졌다.(왼쪽) 오른쪽 사진은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 국립중앙박물관, 한국표준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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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모 |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유홍준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의 사퇴를 불러온 개인 소장품 출품과 작가명 오류 사태는 유 전 관장의 도덕성 논란을 넘어 전시 관련 규정 위반 문제이기도 하다. 독립지사의 글씨로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 작품이 동명이인인 친일파 인사의 것으로 드러났고 해당 작품은 유 전 관장 소장품으로 밝혀졌다. 그런 만큼 이번 사태가 국제박물관협의회(ICOM·아이콤)의 윤리강령과 어떤 부분에서 상충하는지 살펴, 박물관 규정과 원칙을 새로 세우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아이콤 윤리강령은 전 세계 박물관 종사자들이 직무 수행 때 지켜야 하는 최소한의 행동 규범, 즉 헌법과 같은 것이다.

이번 사태는 우선 강령 8조를 위반했다. 8조4항은 박물관 종사자의 전문적 성실성이 사적 이익 때문에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고 정하고 있다. 국공립 박물관 전시는 의도와 상관없이 유물의 공적 가치를 높인다. 그러므로 관장이 자기 소장품을 ‘셀프 추천’해 전시했다는 것이 논란의 핵심이다. 프랑스는 이런 경우 ‘불법 이익취득죄’로 다스린다. 강령은 박물관 직원의 소장품은 기관 규정에 따라 등록하도록 하고 있다. 한국 박물관들 내규에는 이런 규정이 없으나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 나중에 다른 기관에 기증할 생각이라 해도 자기 소장품이 소속 박물관 전시에 포함되는 순간 문제는 이미 발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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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중요한 건 작가가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강령 4조2항과 5항은 전시가 역사적 사실과 정직성을 훼손하면 안 된다고 규정한다. 2조20항은 모든 유물의 작가와 출처, 역사적 배경의 정확한 확인과 기록을 요구한다. 문제의 글씨를 2019년 내놓은 경매회사는 조선 후기 일본 통신사 일원인 박덕원의 작품으로 명기했다. 그러나 작품을 낙찰받은 유 전 관장은 독립지사 박원근 작품으로 수정했다. 이 과정에서 어떤 학술적 근거로 ‘박덕원’이 ‘박원근’이 되었는지 밝혀야 한다. 또 박물관은 강령 8조4항에 따라 전시 목록에 이 작품을 포함했을 때 어떤 근거로 ‘박원근’ 작이란 주장을 수용했는지 공개해야 한다. 국가 기관의 판단은 ‘공인’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점에서 더욱 신중해야 했다.

사후 대응도 투명하지 못했다. 강령은 “박물관이 대중의 신뢰를 유지할 수 있도록 법적 기준을 넘어선 높은 수준의 정직과 투명성을 전 조항에 걸쳐 요구한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문제가 생기자 박물관 쪽은 작가 이름이 틀린 점만 해명했을 뿐 다른 부분은 감추기에 급급했다. 글씨가 관장 소장품이란 사실과 7년 전 경매에서 5만원에 낙찰받은 일, 관장 소장품이 한 점 더 전시된 사실까지 알렸어야 했다. 강령에 따라 처음부터 투명하게 밝혔다면, 잘못이 줄어드는 건 아니겠지만 사태가 이렇게 커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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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장 소장품이란 사실이 뒤늦게 알려진 뒤 유묵 낙찰가에 대한 해명은 백만원 미만에서 30만원, 최종 5만원으로 시시각각 바뀌었고, 다른 사실들도 꼬리를 물고 드러나면서 앞서 한 박물관의 해명은 의심받기에 충분했다. 사과했지만 책임은 다하지 않았기에 박물관의 투명성과 도덕성은 훼손됐다. 박물관 쪽은 강령 2조22항의 ‘대여자 정보 보호’를 근거로 관장 소장품이란 사실을 공표하지 않았다 한다. 하지만 이 조항은 외부 기증자와 대여자 보호를 위한 것이지 박물관 내부 인사, 의사결정권자의 신원을 감추라고 있는 조항은 아니다. 따라서 외부인 보호 규정을 이해충돌 은폐 수단으로 동원했다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다.

결과적으로 이번 사태는 공무원의 법적 책임은 물론 국제박물관협의회 윤리강령의 ‘출처 기록(2조20항)’, ‘작가 오류(4조1항, 2항, 5항)’, ‘개인의 자주성(8조9항)’, ‘개인수집 지양(8조16항)’, ‘박물관의 이익 우선 조항(8조18항)’과 어긋난다. 강령에 근거한 구성원의 소장품 등록과 보고 의무화, 출품 제한, 위반 시 제재 등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 소 잃고 탄식만 할 것이 아니라 이참에 외양간을 단단히 고친다면 결코 손해는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