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이의 커피 수도’로 뜬 치앙마이
부드럽고 옅은 신맛 ‘타이 아라비카’
자고 일어나면 ‘신상 카페’ 줄줄이
최근 한국인이 주목하는 여행지로 타이 치앙마이가 급부상하고 있다. 지난해 치앙마이를 방문한 한국인 수는 28만3681명에 이른다. 치앙마이 인구 120만명(2022년 기준)의 4분의 1에 육박하는 수다. 치앙마이는 치앙마이주에 있는 도시다. 주 전체 인구는 180만명이다. 공유 숙박플랫폼 에어비앤비 데이터를 보면, 지난해 이곳 한국인의 숙박 일수가 전년도에 견줘 50%나 증가했다. 이 데이터에서 한국은 치앙마이 방문 1위 국가로 집계됐다. 중국, 미국, 영국 등이 뒤를 잇는다. 지난달 10일 타이정부관광청이 서울에서 연 신년회에서 타니 생랏 주한 타이대사는 “2024년 타이를 찾은 한국인은 185만8945명으로 목표 수치를 넘은 성과를 이뤘다”고 했다. 그 중심에 치앙마이가 있다.
타이 북부에 자리한 치앙마이는 면적이 약 40.2㎢로, 수도 방콕에서 약 700㎞ 떨어져 있는 도시다. 짜오프라야강 지류인 삥강이 타이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 치앙마이의 젖줄이다. 도시라는 뜻의 ‘치앙’과 새롭다는 뜻의 ‘마이’가 합쳐진 이름이다. 한동안 한달살이 하기 좋은 도시로 각광받은 치앙마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물가와 한국인 입맛에 맞는 다채로운 먹거리, 화려한 사원부터 소담한 상점까지 넘쳐나는 볼거리 등이 여행객을 사로잡는다. 최근엔 커피 투어를 비롯해 각종 체험 프로그램이 치앙마이 여행을 더욱 풍성하게 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그리고 지난달 15일부터 닷새간 치앙마이를 다녀왔다.


황금색 사원에서 맞는 일출
흑설탕 캐러멜처럼 달곰한 어둠이 천지를 덮은 새벽. 여행객 수십명이 천상으로 난 듯한 306개 계단 앞에 섰다. 알싸한 새벽바람이 이들을 감쌌다. 지난달 17일 치앙마이 서쪽 프라탓도이수텝 사원 들머리 풍경이다. 이 사원은 해발 1676m 높이 도이수텝산 위에 있다. 치앙마이에 있는 300여개 불교 사원 중에서 ‘신성한 사원’으로 추앙받는 대표 사원이다. 그도 그럴 만한 게, 계단을 오르면 만나는 쩨디(불탑)는 인간 세상의 것이 아니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온통 황금색으로 빛난다. 웅장하기까지 하다. 새벽을 지배하는 어둠도 황금 쩨디엔 맥을 못 춘다. 수행이 목적인 사원의 화려한 금칠에 반감이 생길 법도 한데, 기실 내막을 알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1383년에 세워진 이 사원은 치앙마이를 수도로 삼은 망라이왕의 란나왕국(13~16세기)에 중요한 상징이었다. 황금색은 불교의 중요한 의미를 반영하는 색이다. 불멸과 신성함, 진리, 빛을 상징한다. 우리 불상 대부분이 황금색인 이유다. 란나왕국 왕실은 나라의 번영과 신의 축복을 황금색을 통해 표출하려 했다.


이날 여행객들은 쩨디 주변을 돌며 저마다의 행복을 기원했다. 어디선가 낯선 소리가 귀에 닿았다. 여행 가이드 시폰(Sipohn)이 그곳으로 안내했다. 그는 몽족이다. 치앙마이 일대에는 몽족을 비롯해 하카족, 카렌족, 아카족, 야오족, 리수족 등 다양한 소수 민족이 전통을 유지하며 산다. 이들의 삶을 엿보는 여행 상품도 있다 . 그가 말했다. “승려가 하는 염불을 따라 명상해보세요. 오른발을 왼발 위에, 오른손을 왼손 위에 올려놓으세요.” 삶과 죽음, 인생과 고뇌의 의미가 염불을 따라 흘러갔다. 신은 내면의 번잡함을 버리고 단순한 삶에서 평온을 찾으라고 한다. 여행객들은 소망을 담은 초에 불을 켰다. 사원에선 초를 판다. 쩨디 앞에는 초를 꽂는 철제 단이 있다.
이 사원은 방문 시간에 따라 풍광이 다르다. 이날 여행객들은 쩨디 아래 조성된 전망대도 찾았다. 어둠에 잠긴 도시 너머로 해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꼭 껴안은 연인이 있는가 하면 해를 손가락으로 집어 먹는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엄지와 검지를 들어 올려 사진 찍는 여행객도 있었다. 밝은 햇살이 나무늘보 걸음처럼 서서히 온 사원에 퍼졌다. 해 질 녘이면 이곳은 일몰로 붉게 물든다.



시폰이 사원 여행의 마지막 장소로 안내했다. 주황색 법복을 입은 승려들이 여행객 앞을 돌았다. 불교 의식인 ‘암스 라운드’(Alms round)가 펼쳐졌다. 승려가 주민들이 준비한 공양 음식을 받는 예식이다. 승려들은 공양한 뒤 기도와 명상 시간을 가진다.
치앙마이 사원의 건축미학을 오롯이 경험할 수 있는 데가 이곳만은 아니다. 길이 2.2㎞ 규모의 성벽과 4.5㎞ 해자(성 주변을 둘러 판 연못)로 둘러싸여 있는 ‘올드시티’에도 독특한 구조와 색으로 무장한 사원이 여럿 있다. 5개 문 중 동쪽 문인 타패 게이트를 통과해 서쪽 문인 수안독 게이트 방향으로 걷다 보면 쩨디루앙 사원, 프라싱 사원, 판따오 사원 등을 만난다. ‘큰 불탑이 있는 사원’이란 뜻의 쩨디루앙 사원은 황금색 사원들과 달리 소박한 흙벽돌로 지었다. 하지만 15세기 초 창건 당시 높이는 90m에 이를 정도로 웅장했다. 16세기 중반 지진을 겪은 뒤 현재는 대략 60m 높이다. 정교한 코끼리상과 기괴한 문양의 조각상은 신비롭다.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하게 하는 묘한 힘이 있다. 황금색인 프라싱 사원엔 인간을 닮은 친근한 불상이 많다. 검은색 지붕과 벽으로 된 판따오 사원은 란나왕국의 건축 양식을 학습하기에 더없이 좋다.


백색 사원에서 깨닫는 교훈
치앙마이 여행의 핵심이 사원인 데는 이유가 있다. 2023년 기준 타이의 불교 사원 수는 약 4만3500개다. 치앙마이가 있는 북동부에 가장 많다. 인구의 약 93.4%가 불교 신자다. 중국에 이어 전세계에서 두번째다. 이렇다 보니 타이에서 사원은 그저 종교 행사를 치르는 장소로만 머물지 않는다. 사회의 중심이자 교육과 사교 모임의 거점이다. 이 나라를 이해하는 데 사원 탐구는 필수다. 더구나 건축적 가치는 세계적인 수준이다. 사원마다 다른 디자인, 눈을 사로잡는 역동적인 리듬의 지붕, 복잡하고 정교한 조각상 등 타이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문화유산이다.
치앙마이에서 차로 3시간 거리인 치앙라이에 있는 롱쿤 사원은 타이 건축의 현재를 조망하는 사원이다. 타이인과 외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명소다. 일명 ‘화이트 템플’(백색 사원)이라 불리는 이 사원은 1997년 타이 국립예술가로 칭송받는 찰름차이 코싯피팟이 설계하고 지었다. 그는 이 사원을 부처에게 바치는 공물로 규정하고, 중생들에게 불멸의 삶을 선사할 배움과 명상의 공간이 되길 바랐다.



지난해 10월 방문한 롱쿤 사원은 별칭답게 눈보다 더 하얀 색으로 여행객을 유혹했다. 콘크리트 뼈대와 나무 지붕이 기본 구조인 사원. 흰색 석고와 유리 삽입물로 장식돼 햇빛 아래에선 더 눈부시게 아름답다. 신비한 체험도 하게 된다. 눈으로 본 사원은 하나인데, 사진엔 두개다. 연못에 비친 사원이 함께 찍혀서다. 눈으론 연못에 반사되는 사원이 잘 보이지 않는다. 신기한 노릇이다. 사원 안으로 인도하는 다리 아래엔 지옥을 형상화한 조각품이 설치돼 있다. 잠시라도 선이란 보편타당한 기준을 간과하고 욕망에 한눈팔면 지옥이 코앞에 펼쳐진다는 교훈을 설파하는 듯했다.
‘은빛 사원’으로 불리는 시수판(스리수판) 사원도 걸작이다. 치앙마이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원으로 추앙받는다. 수안독 사원에도 흰색 탑이 있다. 왕가의 유골이 들어 있다. 일명 ‘꽃 정원 사원’이라 불린다. 꽃밭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굴 여러개가 있어 타이가 공포영화 강국임을 떠올리게 하는 우몽 사원도 방문 목록에서 빼면 안 되는 특이한 사원이다.




관광지로 유명세를 치르는 사원이 번잡한 이들도 있다. 도이수텝산 기슭에 자리한 파랏 사원은 명상 승려나 현지인이 자주 찾는 곳이다. 한국인을 포함한 여행객들에겐 거의 알려지지 않은 현지인 ‘최애’ 명소다. 숲에 폭 싸인 사원은 자연의 고요가 인간의 거무죽죽한 심상을 얼마나 맑게 하는지 보여준다. 등산족도 ‘애정’하는 숨은 여행지다. 자연의 진정한 세례, 평화가 가득하다.
지난해 10월과 지난달 17일 두번이나 이곳을 찾았다. 도착하자마자 새소리가 반겼다. 탑을 지나 계단을 몇개 통과하자 냇물을 만났다. 냇가 앞엔 기괴한 새 문양과 벗겨진 칠, 아치형 문 몇개로 구성된 독특한 건물이 있었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 주인공이 단박에 튀어나올 듯했다. ‘인스타그래머블&